미우새 나온 유노윤호!!

미우새에 다양한 게스트들이 출연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유노윤호가 출연했다고 합니다!

유노윤호는 연예계에서 말도 없고 탈도 없는 연예인으로 유명하죠!

자신의 제일 싫어하는 벌레가 대충이라고 할 정도로 항상 부지런하고 노력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

미우새에 출연했었던 홍진영과 김희철 등과 친분이 있는 유노윤호는 오프닝 때 아는 어머님들이 계셔서 더 긴장되고 특히 어머님들을 실물로 뵈니 더욱 고우시다고 말해 호감을 샀습니다 ㅎㅎ

이에 어머님들은 유노윤호에게 조각상 같이 잘생겼다고 하며 영광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작부터 훈훈하게 시작하네요 ㅎㅎ

유노윤호는 열정이 그 어떤 사람보다 대단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사람이 보면 정말 한결같습니다.

제일 대단한 사람이 한결같은 사람인데요

특히 국민 MC 유재석은 그 착한 심성이 처음에는 방송용인 줄로만 알았고 그 어떤 연예인들이 결국엔 어떠한 트러블이 생기듯 유재석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태 단 한 번도 실수를 했다거나 나쁜 짓을 했다거나 그러한 류의 루머나 기사거리 찌라시들도 보질 못했으며 그건 유노윤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결국 실수하기 마련인데 그 실수조차 하지 않았거나.. 실수를 했었는데 그 실수를 덮어줄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해왔다거나 둘 중 하나인데 둘 중 하나라도 정말 대단한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유노윤호에게 신동엽은 열정만수르 이미지가 피곤하지는 않냐?고 묻자 유노윤호는.. 사람이기에 피곤한 건 당연한 건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냐..이건 마인드 차이인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열정이 너무 대단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하는 유노윤호는 군 현역시절에도 군인에 대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주변 인물들에게도 귀감이 되게끔 하는 바람에 직업군인 영입 제의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ㅋㅋ

근데 보통 사람이라면 고소득 직업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유노윤호는 직업군인이라는 말에 사명감을 느끼고 회사에다가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서 직업군인을 하고 싶다는 것인데요.

소속사에서는 본분을 잊지마..말뚝 박으면 영영 못 나와 정신차려라고 말려서 겨우 본분을 지키게 됐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러한 열정은 유노윤호의 아버지가 물려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유노윤호보다 더 열정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상상할 수도 없네요 ㅎㅎ

유노윤호는 미우새에 출연해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풀어놨는데요.

학생시절 때 친구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생겼으니 그 친구랑 잘 되게 좀 도와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한 후 따라갔더니 자신의 여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ㅋㅋ

그리곤 바로 친구의 멱살을 잡고 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당장 그만둬라..라고 따끔하게 경고를 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버스정류장에 여동생이 서 있었는데 또래보다 키도 크고 성숙했다고 해 많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요.

미우새에 출연해서 입담을 날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

유노윤호는 데뷔스토리도 정말 대단합니다.

제1회 SM 엔터테인먼트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댄스짱 1위를 수상하며 2000년에 연습생이 되었습니다.

데뷔 전에는 다나의 백댄서나 객원 랩퍼를 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는데요.

그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에 팬클럽이 있었는데, 데뷔2 년 전인 2002년 중국의 유명 엔터매거진 COOL에서 독자들의 문의 쇄도 덕분에 SM 해외사업부에 특별히 요청하여 연습생 신분으로 단독 인터뷰까지 진행합니다.

날카로운 느낌의 첫인상과 달리 순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라 연습생들에게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춤을 가르치는 댄스 코치 역할을 할 때는 매우 엄격했다고 하니다.

실수를 하면 20번만 다시 하겠습니다라며 구호를 붙여 땀 흘리기 싫어하는 희철이 치를 떨다 대판 싸울 뻔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위계 질서에 엄격하고 연장자를 깍듯이 대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격이지만 무대에 대한 엄격함이 먼저였던 모양입니다.

2014년 9월 16일 방송된 매직아이에서 선후배 관계의 예릐를 챙기는 것에 대해 언급하던 중 이효리가 유노윤호를 언급하자, 김태우가 유노윤호는 선배에게도 정의감이 있다고 발언해 상상력을 자극한 바 있습니다 ^^

 

유노윤호는 자신의 부모님이 27세에 결혼을 했다고 밝혀 옛날부터 소속사에게 자신도 27살이 되면 결혼을 하겠다고 포부를 당당히 펼쳤지만 아직까지 결혼소식이 없네요 ㅋㅋㅋㅋ

유노윤호 화이팅입니다

우리들의 419혁명이 유네스코에 등록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4월 19일은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날입니다.

1960년 제4대 정, 부통령 선거에서 야당쪽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단독 후보가 되어버린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고령자인 이승만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는 부통령직이었는데요.

이승만 정부는 여당인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었습니다..

3월 15일 선거 당일부터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개되었었는데요.

이날 경찰의 시위 진압으로 사망하게된 김주열 선생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시위는 더욱 격렬해집니다.

정부는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의 강력한 항의를 저지하고자 시위의 배후에 공산당이 있는거라며 위협하였지만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갔습니다.

 

4월 19일.. 서울에서만 학생과 시민 10만여 명이 참가하는 등 전국적으로 시위가 격화되었는데요.

이승만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강경하게 대응하여, 경찰의 발포로 서울에서만 110여 명이 사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계속 퍼져 나갔으며, 대학 교수단을 비롯한 국민은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지금 419혁명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은 당일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얼마 전에 치뤄진 총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같은 관심이 깊어진 것 같기도 하네요.

문재인 대통령은 타이밍이 좋은 것인지 오늘로써 419혁명 60주년을 맞아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문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가보훈처 주최로 서울 강북구 소재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419혁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최초의 민주화운동이고, 전세계 학생운동의 시작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굳건한 뿌리이고 주권재민을 훼손한 권력을 심판하고, 정치 사회적 억압을 무너뜨린 혁명이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419혁명 참가자들의 공적을 발굴해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에 새기고 기리겠다고 합니다.

근데 사실.. 밝혀지면 뭐하나요 지금 이 나라가 있기까지 인생을 바치신 분들인데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 덕분에 점점 헌신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국가유공자분들의 대우가 어떻습니까 파지 주우러 하루종일 다니시고 겨우 끼니 해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문정권 들어서고 대우를 해줘야 하니 마니 하는데 지금도 문정권에서 책임지고 처우개선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세상이 각박해지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와줘도 남는 건 인생허비밖에 없으니까요.

군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년 억지로 끌려가서 인생 버리고 오는데 갔다오면 인생을 배우니 기술을 배우니 이런 말들 합니다.

밖에서도 충분히 인생 배우고 기술 배웁니다.

정당한 대가 받아가면서요.

군대 안 가는 사람들은 누릴 거 다 누리고 집에서 편하게 생활한 사람들이 군인들 보고 짐승이니 개, 돼지니 예비 살인자들이니 이러한 말을 합니다.

대체 누구 때문에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망각한 채 말이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역사를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60주년 기념사 전문을 끝으로 이번 포스팅 마무리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오늘은 4·19혁명 60주년입니다.

목숨보다 뜨거운 열망으로

우리의 가슴 깊이 민주주의를 심었던 날입니다.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으로,

우리는 함께하면 정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민주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뜨거웠던 그 날 이후,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진달래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영혼들을 기억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는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멈출 수 없는 희망이 자랐습니다.

4·19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혁명이 아닙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먼저

‘독재타도’를 외치며 정의의 횃불을 들었습니다.

3월 8일, 대전의 학생들이 ‘민주와 자유의 깃발’로 호응했고,

기어코 3.15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마산의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3·15의거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4월 19일,

서울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재타도’에 나섰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과 정의, 평화라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가치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함성으로 되살아났습니다.

4.19혁명은 민주주의를 향한 전 국민의 공감과

저항 정신이 축적된 결과였습니다.

정부는 2018년 드디어

2.28대구민주운동과 3.8대전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3.15마산의거와 함께 4.19혁명을 이끌어낸

연결된 역사로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2.28대구민주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마산의거,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60년 전, 이 땅에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심어주신 주역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굳건한 뿌리입니다.

‘주권재민’을 훼손한 권력을 심판하고,

정치·사회적 억압을 무너뜨린 혁명이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학생들은 학원 민주화를 외쳤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했으며,

교사들은 민주시민 교육의 길을 열었습니다.

제주4.3 유가족과 전국 각지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도

강요된 침묵을 걷어내고 진상규명의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4.19혁명이 남긴 ‘민주주의의 시간’은 짧았지만 강렬했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독재의 시간’은 길고 어두웠지만,

‘4.19민주이념’은 끝내 우리 헌법의 정신으로 새겨졌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엄혹했던 시대를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이겨나간 국민들은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을 거쳐 2016년 촛불혁명으로 드디어 4·19혁명 그날의 하늘에 가 닿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면서,

그 자부심으로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을 헤쳐 가는 힘도

4.19정신에 기반한 자율적 시민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일상을 양보해 주셨고,

사재기 하나 없이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우리가 억압 속에서 지켜낸 민주주의,

우리가 눈물 속에서 슬픔을 나누며 키워온 연대와 협력이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도

국제공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봉쇄와 고립이 아닌 글로벌 연대만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고,

마지막 확진자가 완치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지만,

우리는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에 기반한 강력한 ‘연대와 협력’으로

반드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세계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IMF는 지금의 경제상황을 1920~30년대의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침체로 진단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IMF는 한국도 올해 마이너스 1.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우리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을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핵심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를 돕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을 보호해야 합니다.

IMF는 올해 우리나라가

OECD 36개국 중 성장률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생산, 투자, 소비, 수출의 동반 감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국민의 삶이 무너진다면

성장률 1위가 된다 해도 결코 위안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총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엄중한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 살리기에도 국민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일자리 지키기에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부는 노사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정부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감염병과 함께 닥쳐온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국회에서도, 국민들께서도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4·19혁명이 추구했던 정치적·시민적 민주주의를 넘어

모든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구현해야 할 4·19혁명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세계인에게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동시에 코로나 이후의 사회, 경제적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함께 겪게 될 ‘포스트 코로나’의 상황을

우리가 다시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세계인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 산업, 교육, 보건, 안전 등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세계적 규범과 표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통합된 국민의 힘으로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일상,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준비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4.19혁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은

어제의 경험이 오늘과 미래의 우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4.19정신’을 국민과 함께 계승하기 위해

민주 유공자 포상을 확대해왔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19 혁명유공자 쉰한 분을

새롭게 포상했고,

오늘 다섯 분의 유공자와 가족들에게

직접 포장을 수여하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정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4·19혁명 참가자들의 공적을 발굴해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에 새기고 기리겠습니다.

이곳 국립 4.19민주묘지는 민주주의의 성지입니다.

2022년까지 부족한 안장능력을 확충해

모든 유공자들을 명예롭게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하반기로 연기된 ‘4·19혁명 국민문화제’가

60주년의 의미에 걸맞은 국민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4·19혁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최초의 민주화운동이고,

전세계 학생운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그 의미를 특별히 기리고

4.19혁명의 정신을 인류에게 남기기 위해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할 것입니다.

4.19혁명 이후, 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노래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민주주의를 실천했고,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우리 안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봄마다 진달래는 슬픔을 이기고,

아름답게 산천을 물들일 것입니다.

4·19혁명과 함께한 우리의 선대들을

영원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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