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UFC 선수에게 폭행당하다?!

힙합가수 겸 프로듀서 박재범이 UFC의 미국 종합 격투기선수 브라이언 오르테가로부터 뺨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 아리엘 헬와니 기자는 8일 트위터에 "UFC 248 대회 현장에서 박재범(Jay Park)이 폭행을 당했다"고 썼습니다.

박재범은 오르네가와 대전 예정이었떤 파이터 정찬성의 소속사 사장이기도 합니다.

헬와니 기자는 "정찬성이 화장실에 간 사이 UFC 페더급 랭킹 2위인 오르테가가 다가왔고 박재범이 맞냐고 물어봤고,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손바닥으로 박재범을 때렸다"고 전했습니다.

오르테가는 박재범의 통역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해당 소동이 벌어진 뒤 촬영된 사진도 물리적 폭행이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박재범과 나란히 서서 촬영한 사진을 올린 이는 "오르테가로부터 공격당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오르테가와 정찬성

인터넷에는 폭행 소동이라고 불리는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박재범의 모습을 촬영한 장면과 오르테가가 경호원에 이끌려 나가는 장면도 퍼지고 있는데요.

정찬성과 오르테가는 지난해 12월 UFC 한국 대회에서 맞대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르테가의 십자 인대 부상으로 경기는 무산됐는데요.

정찬성은 이후 대체 선수인 베테랑 프랭키 에드가(미국)를 2라운드 TKO 꺾었습니다.

이후 둘의 감정은 좋지 않았는데 정찬성은 이후 ESPN과 인터뷰에서 누구와 붙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날 피해 도망간 오르테가를 굳이 잡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때 인터뷰 통역을 박재범이 맡았는데요.

오르테가는 자신을 '도망자', '겁쟁이' 취급한 인터뷰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며 박재범에 대해서도 "나와 마주쳤을 때 내가 때려도 놀라지 마라. 부상과 도망가는 건 다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인터뷰로 시작된 신경전 때문에 박재범이 브라이언 오르테가와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찬성은 최근 SNS를 통한 팬들과 만남에서 "사장님이 살짝 두려워 한다. 내가 지켜주겠다. 우리 사장님을 건드리면 나도 안 참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두 선수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맞대결 가능성도 아직 열려 있는데요.

타이틀 도전을 원하는 오르테가와 정찬성은 각각 페더급 랭킹 2위와 4위에 올라있습니다.


박재범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3세 출신의 래퍼이며, 그 외에도 비보이, 프로듀서, CEO 등으로 활동중이다.

아이돌 그룹 2PM의 전 리더, 리드보컬, 래퍼, 메인댄서를 맡고 있었다.

시애틀에서 나고 자랐으며 비보이 출신으로 어머니의 권유로 참여한 2004년 JYP 시애틀 오디션에서 합격하여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2PM에서 탈퇴한 후 시간이 지나 싸이더스HQ 기획사와 계약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에 계약기간이 끝나자 같은 해 10월에 힙합 레이블 AOMG를 설립하여 수장으로서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에는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 프로듀서 차차말론과 글로벌 마켓을 염두에 둔 하이어뮤직을 설립했다.

2PM시절.. 이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이야기... 그러나 가수로서 박재범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며 뛰어난 춤 실력과 근육질 몸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당시 그룹의 팀 컬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멤버로 불렸는데, 팀의 정체성이었던 아크로바틱 안무와 짐승돌 포퍼먼스를 거의 전담하다 시피 하였다.

많은 이에게 회자되었던, 신인 1년차 시절 처음으로 참가한 MAMA 무대에서 보여준 1분 포퍼먼스 중 멤버들의 어깨를 딛고 올라가 공중에서 아크로바틱 안무를 선보이며 찾기 후 피니쉬로 이어지는 솔로 퍼포먼스를 홀로 수행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팀 내 리드보컬과 메인댄서 등 모두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리더, 맏형 포지션까지 맡았었다.

리더로서의 리더쉽 역시 당시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서 모두 호평받은 바 있으며 외국인 + 개그캐 기믹과 특유의 성격 때문에 정신나가고 자유분방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 동생들이 날뛰어도 안 말리고 같이 날뛰는 짐승돌 리더 다운 모습과, 그에 대비되게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솔선수범한 모습으로 칭찬받았다.

공식 별명이 '리드자'여서 스스로도 리드자라고 지칭하곤 했다.

그외에 최단신 캐릭터도 있어서 꼬꼬마 리드자라는 별명이 캐치 프레이즈에 가깝게 자주 쓰였고, 팬들이나 멤버들도 이걸로 놀려먹는게 일상이었다.

그룹의 솔직하고 털털한 예능감 면에서도 가장 두각을 드러내었고, 멤버들끼리 하는 예능에서 신인답지 않은 대담한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타 프로그램에서도 스타 골든벨에 나가서 빵빵 터뜨리는 등 예능감이 뛰어나고 솔선수범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9년 9월 5일, 당시 4년 전이었던 2005년에 마이스페이스에 연습생 시절 쓴 글이 디씨인사이드 코갤러에 의해 악의적으로 오역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는 기사화되고 결국 문제가 터진지 사흘만인 2009년 9월 8일 2PM을 탈퇴하고 당일날 출국하여 고향인 미국 시애틀로 돌아갔다.

이후 <PD수첩>과 여러 방송매체에 다뤄진 바 있듯 엄연한 오역이었음이 밝혀졌다.

이후 복귀한다는 소식이 돌았으나 2010년 2월 25일 영구 탈퇴했다.

물론 현재 박재범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크게 성공하면서 이 논란은 대중과 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잊혀지게 되었다...

셰리프 모하메드에 TKO승 거둔 사랑이아빠 추성훈!

28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싱가포르 기반 종합격투기 대회 'ONE : KING OF THE JUNGLE'에서 추성훈이 웰터급 셰리프 모하메드(이집트)를 만나 1라운드 3분 5초만에 화끈한 TKO승을 거뒀습니다!

추성훈이 종합격투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2014년 9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UFC대회에서 아미르 사돌라(USA) 판정승으로 제압한 이후 5년 5개월 만입니다.

힘들어 보이는 추성훈

추성훈은 경기 초반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모하메드의 공격에 고전했었습니다.

경기를 하면서 격투 감각이 완전하지 않은 탓에 킥과 펀치를 날리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유로운 경기력이 본인의 페이스였던 추성훈이 몰리자 경기는 모하메드가 주도해갔습니다.

그러나 추성훈은 살아있었습니다.

 

모하메드가 안면을 드러내고 들어오는 순간 상대 펀치를 가뿐하게 피한 뒤 강력한 오른 손 스트레이트 펀치를 얼굴에 적중시켰고 주먹이 안면을 강타한 뒤 모하메드는 앞으로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셰리프 모하메드전 추성훈의 승리!


매혹적인 추성훈

추성훈

한국계 일본인이며 재일 한국인 4세 출신으로 일본 본명은 아키야마 요시히로이다.

유도센스가 뛰어났으며 경기마다 유도 도복을 입고 출전할 정도로 애정 또한 각별하다.

실력까지 매우 뛰어나 수차례 국가대표로 선출까지 됐었으며, 이후 종합격투기로 전향한 후에도 뛰어난 활약을 하며 많은 인기를 모았다.

합성같지만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를 꿈꾸며 조국으로 왔지만 대단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파벌에 의해 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조국을 언급하며 한국에 애정을 표하는 그를 좋아한다.

추성훈은 조국 한국의 국적을 놓지 않으며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을 때는 사랑받지 못했으나, 국적을 버린 후에야 조국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았다.

집에 있는 한국대표로 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과 일본대표로 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그의 인생을 대변해주고 있다.

아버지(추계이) 또한 유도 선수 출신이어서 어릴 적부터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대한민국 부산으로 건너와 부산광역시청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곳에서도 좋은활약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 선발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같은 체급인 -81kg 급에는 1997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조인철이 있었는데, 추성훈은 그 조인철을 넘어서지 못 했던 것이다.

 

결국 귀화하고, 귀화한 지 한 달여 만에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고 결승에서 대한민국 선수인 안동진에게 판정승을 거둔 뒤,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쪽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스포츠조선은 이 경기를 보도하면서 기사 제목에는 '조국을 메쳤다'라는 표현을 쓰는 등.. 시선이 그리 좋지 못했다.

 

허나, 한국일보는 '도복엔 일장기 가슴엔 태극기'라는 표현을 썼다.

이후 K-1에 진출하여 2004년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에 데뷔한 그는 불리한 룰에도 불구, 프랑소와 보타를 가볍게 암바로 제압한 이후 유도선수 출신답지 않게, 그라운드는 물론, 타격으로도 많은 승리를 거뒀다.

2006년에는 타격가로 소문났던 멜빈 만호프에게서 역전 암바승을 거둠으로써 히어로즈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하지만 챔피언 등극 후 12월 일본의 사쿠라바 카즈시와 일전을 벌인다.

 

추성훈은 사쿠라바를 넘어뜨려 파운딩을 계속해서 했고, 심판이 경기를 중단선언 후 TKO승을 얻었지만 몸에 크림을 발랐다는 사실이 알려져 NC처리되고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대전료를 몰수당하고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처벌까지 받는다.

이후 2007년 10월 출장정지에서 풀려난 뒤 서울에서 데니스 강과의 대전에서 4분 45초만에 어퍼컷으로 KO승을 거둔 뒤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2009년에는 UFC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열린 데뷔전에서 앨런 벨처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이 판정을 대단히 논란이 되었는데, 1라운드에서 다운되고 2라운드에 실컷 얻어맞았으며 3라운드에는 체력이 고갈되어 죽기 직전까지 밀렸다는 주장.

그러나 추성훈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UFC는 라운드별 채첨방식이며 1라운드의 벨처의 반칙과 더불어 2라운드까지 테이크 다운 점수로 근소하게 리드했기 때문이다.

추성훈은 경기에서 체력이 약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여러 경기들이 있었고 2018년에는 UFC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ONE Championship과 계약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예능방송을 하거나 가정에 충실하는 모습이다.


추성훈은 굉장히 스토리가 많은 인물인 것 같아요

아내인 야노시호도 과거 일본에서 탑급 모델로 활동도 했었고, 딸 추사랑 또한 국내에서 인기가 절정이었죠

가족단위로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벌다보니 추성훈은 일본에서 '하이퍼카'인 라페라리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 499대 한정이라는 이 차량은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인 '페라리'사의 플래그쉽 모델인 '라페라리'입니다.

가격은 약 18억원으로 배기량 6,262CC에 최고시속 350Km를 자랑하는 괴물급 하이퍼카로 제로백은 3초도 안 된다고 합니다.

추성훈은 일생일대를 피와 땀으로 보냈기 때문에 이런 고급 차량을 탈 수 있는가 봅니다.

나이가 40대를 넘어섰기 이젠 격투기보다는 가정의 아버지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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