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포뮬러 회장의 득남소식?!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을 얼마 전까지 이끌었던 버니 에클스턴(90, 영국)이 생애 첫 아들을 얻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에클스턴 전 회장의 아내 플로시는 브라질 사람으로 남편보다 무려 46살이나 어린 44세라고 합니다.

버니 에클레스톤(1930년 10월 28일~)은 영국의 기업인으로, F1레이스 팀이었던 브라밤 팀 오너였으며, F1의 주관사인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오너였습니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고문을 맡고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모터스포츠를 키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풀네임은 '버나드 찰스 에클레스톤'입니다.

 

영국 서포크 주에 거주하는 한 어부출신의 아들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바이 부품 장사로 돈을 벌었습니다.

1949년 F3를 관전한 이후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쿠퍼사의 F3 차량을 구입하고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스스로 드라이빙에는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한도안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는데요.

모은 자금으로 세운 코넛이라는 팀의 매니저가 되어 1958년에 모나코 GP에서 데뷔하였으나 그해 영국 GP를 마지막으로 딱 두번의 GP 출전경력이 있을 뿐이며, 포인트조차 1점도 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헨 린트를 만나 그의 매니저가 되어 그를 챔피언으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던 중 1971년 브라밤팀의 오너였던 론 토러넥을 만나 브라밤 팀을 팔라고 오퍼를 넣었고 그게 받아들여져 매각이 성사되었습니다.

 

그가 브라밤을 운영하던 1971년~1987년 동안 팀은 넬슨 피케라는 걸출한 드라이버를 만나 챔피언을 만들어줬고 명문팀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74년에 FISA(FIA에서 떨어져나와 F1을 운영하던 조직)의 F1 운영 전횡에 맞서 팀들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그를 비롯한 당시 F1 팀 오너들(콜린 채프먼, 프랭크 윌리엄스, 테디 메이어, 켄 티렐, 맥스 모슬리)이 모여 FOCA(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을 세우게 되고, 1978년부터 버니가 FOCA의 회장을 맡게 됩니다.

 

FOCA는 운영수익을 팀들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했는데요.

그리고 프로모터인 FOPA(FO Promotion and Administration)를 설립하는데 이 조직이 훗날 FOM이 됩니다.

 

F1의 TV 중계권 및 상업적인 운영권을 쥐고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하는 식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F1의 매출을 1조 7천억 원까지 끌어올렸고 상당한 부를 축적합니다.

F1의 안전 규정 강화에도 힘을 써서 1978년에 이탈리아 GP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전문의를 상주시키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으며 대회의 사망률을 줄여갔습니다.

2017년에 F1 운영권을 80억 달러의 가격으로 미국의 스포츠 컨텐츠 기업인 '리버티 미디어'에 매각하면서 드디어 FOM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여성편력이 극심한 편이라 3번이나 결혼했다고 합니다.

1952년에 결혼한 첫번째 부인 아이비 밤포드 사이에 55년생 데보라라는 딸이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 부인은 1985년 크로아티아 출신 모델인 슬라비카 에클레스톤(58년생... 딸 뻘)과 결혼해서 2009년에 이혼했습니다.

 

이혼할 때 위자료가 무려 1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슬하에 두 딸(타마라, 페트라)이 있고 둘다 결혼했습니다.

문제는 세번째 부인인 브라질 출신 법조인 파비아나 플로시인데 2012년에 결혼했고 나이차이가 46살입니다.

결혼당시 두 딸이 모두 반대했지만 강행했고 딸들은 결혼식에 안 왔다고 하네요....^^

 

사건사고가 많은데, 2010년에는 어느 레이싱 걸과 집에서 놀다가.. 강도가 들어 현물을 뺏기는 건 물론 폭행까지 당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구타 당해서 눈과 턱에 멍치 시퍼렇게 들었었는데 그대로 공식석상에 당당하게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한술 더 떠 그때 위블로 시계를 강탈 당했는데, 폭행 당한 모습 그대로 위블로 킹파어 모델의 광고에 출연까지 합니다.

 

첫째 사위가 마약범 도주를 도왔다가 기소당하기도 하고.. 2016년에는 브라질에서 그의 장모가 납치당해 몸값을 400억 가까이 요구하던 걸 현지 경찰이 구출해내기도 합니다..

둘째 사위네는 2017년 말에 집에 강도가 들어 9000만 파운드(1343억원)의 현물을 털리기도 합니다.

그 둘째 사위는 페트라와 이혼소송 했다고 합니다.

 

F1 회장 재임 시절 아일톤 세나에 대해서 결과적으로는 그의 죽음이 F1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발언하여 구설수에 올랐었으나 죽음 이후로 F1의 안전규정이 강화되어 사망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맞지만 발언의 뉘앙스가 마치 잘 죽었다는 느낌이더라구요..

세나가 생전에 버니를 포함한 F1의 높으신 분들과 다퉜던 것을 생각하면 노인네의 뒤끝이 아니냐는 설도 있습니다.

플로시는 에클스턴 전 회장의 세 번째 아내인데요.

지금의 아내 플로시와는 2012년에 결혼했으며 첫번째 아내와의 자녀인 딸 데버라(65)와 둘째와 셋째딸인 태머라(36)와 페트라(32)는 두번째 결혼에서 얻었습니다.

에클스턴 전 회장은 이미 손자만 5명이라고 합니다.

이제 "아재서요?"라는 말은 없어져야 할 것 같네요^^...

 

 

결혼운이 없었던 이하늘.. 이혼하다

 

DJ DOC의 래퍼 이하늘(48)씨가 결혼한지 1년 4개월여 만에 이혼사실을 알렸습니다.

24일 소속사인 슈퍼잼레코드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이하늘의 이혼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밝혔는데요

 

지난 2018년 10월 이하늘은 11년간 교제한 17세 연하의 연인과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1년 4개월만에 파경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소속사 측에서도 입장을 내놓았는데요

 


안녕하십니까 슈퍼잼 레코드입니다. 저희 레이블의 래퍼 이하늘씨의 이혼 소식을 전하게 되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우선 이하늘씨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며, 두 사람은 신중한 고민 끝에 결혼 생활을 마무리 하기로 결저하고, 원만한 합의를 거쳐 이혼 과정을 밟아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응원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이하늘씨의 개인적인 일인 만큼, 이혼과 관련한 무문별한 추측과 허위사실 유포는 자제해 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 제주도 결혼식 장면을 공개한 이하늘은 신부에 대해..

자신이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한 친구다.

제가 사건사고도 많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옆에 있어줬던 소중한 친구라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연애 11년만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동안 둘 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길었다면 이제는 그래도 가보자고 했다. 자기만 바라봐준 사람이다 결정은 늦었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래 기다리게도 했지만 이제는 꽃길만 걸을 수 있게 길을 열심히 만들 거라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평생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ㅠㅠ


이하늘

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이자, 남성 3인조 그룹인 DJ DOC의 리더.

가성사가 많이 암울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후 서로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다고 한다.

 

이하늘과 관련없는 할머니

이로 인해 그를 포함 3남매를 양육할 사람이 없어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집안까지 많이 어려웠다.

고등학교도 기숙사도 제공되고 학비도 나오는 국악 특기자로 들어갔다가, 어느 날 몰래 집에 갔는데 집안 사정을 보고 학교를 자퇴한다.

 

매혈 등으로 돈을 벌다가 DJ가 되기로 결심 후, 1992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클럽 DJ로 활동하다가 철이와 미애로 유명했던 신철을 만나게 되고, 이후 대구광역시의 클럽으로 옮겨 박정환을 만나고, 신철의 제안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유명한 DJ였던 김창열까지 모여 1994년 2월 첫 합숙에 들어가고 6월에 DJ DOC라는 그룹을 결성했으며, 1994년 9월에 가요계에 전격 데뷔했다.

 

군대는 당시의 다른 연예인들처럼 면제를 받았지만, 이하늘의 경우 부모님이 이혼했고, 집안의 가장으로 할머니와 미성년 동생 2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유가 적용되어 정식적으로 면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동생 이현배는 군대를 갔다고...

 

 

천하무적 야구단의 멤버로도 활동했으며, 담당 포지션은 포수로, 현 천하무적 야구단의 3대 주장이다.

여담이지만, 천하무적 야구단 첫방 당시 본인 방송을 보지 않고 무한도전을 시청해서 길이 너무 싫다고 글을 남기는 바람에 그게 무한도전에서 개그 소재로 쓰였고 그 글은 성지가 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슈퍼스타K4 지역예선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하였고 로이킴의 심사를 맡게 되었을 때 이승철과 백지영 등은 모두 로이킴에게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대로 간다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이하늘은 팝송도 그렇게 소화한다면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하며 슈퍼패스를 사용하여 로이킴을 합격시킨다.

이후 로이킴은 뛰어난 성장을 거두며 결국 우승을 하게 된다.

 

때문에 로이킴에게는 그는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며, 다른 사람들도 그의 안목을 다시 봤다는 평가.

2013년에도 슈퍼스타K5의 메인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는데 이때 로이킴 관련 사건이 약간 있어서 이하늘의 안목이 재평가되었지만 결승 심사평에 노잣돈 언급으로 많이 까였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정준영 게이트에 로이킴이 연루되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가 되자 또 다시 이하늘은 나쁜 쪽으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하늘과 김창열 모두 폭력 전과들이 한 번 이상 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이하늘은 전과 4범이다.

 

2001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느 투자자와 마찰이 생겼고,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으며, 이외에도 멤버 전체가 폭력 전과로는 정말로 화려한 이력들을 지니고 있다.

하도 이들 멤버에 의한 폭력 혐의가 끝이 없다보니, 심지어 마케팅 방법의 일환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단! 관련 문서에 나와 있다시피 그 중에는 깽값을 노리고 시비를 걸어온 부류도 있다는 건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폭행 전력이 있는 건 사실이고, 또한 폭력은 엄연히 범죄임은 분명하다.

 

사실 이하늘하면 베이비복스 발언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하늘 최악의 흑역사이자 베이비 복스의 해체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다.

이 사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를 쓰진 않겠지만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DR뮤직과 베이비복스 사이에 마찰이 있었는데 그 기름에 이하늘이 불을 땡기고 기자들이 부채질을 하여 베이비 복스의 해체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 2008년 9월 23일, '안티 VS 스타'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하늘은 해당 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하늘씨 앞 날의 변화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혼을 하는 상황이라 많이 힘들텐데..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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