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병으로 인해 이상해져가는 상황

일본이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니면 나라의 유통기한이 다 돼서 그런지 점점 맛탱이가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방지법으로 나온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학연기 등으로 피해를 막아보려고 하는 중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이고 개학연기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이상한 개학을 했다고 하는데요.

바로 온라인 개학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각자 집에서 영상통화를 통해 수업을 받는 방식이 일부 적용된 것 같긴 한데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와전이 됐는지..

선생만 집에 있고 아이들은 집단감염에 노출된 채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합니다.

저 온라인 개학이 대체 무엇에 도움이 될까요???

선생님만 코로나19로 부터 안전하면 된다는 발상으로 저렇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모임을 기피하고 집단생활 또한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현 시국에서 면역력도 약한 아이들을 한데 모아두고 수업을 한다는 것은 어른으로서도 그렇지만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되네요.

지난 13일 일본의 미에현 스즈카시의 초등학교 30곳과 중학교 10곳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정비에 따라 전자 칠판 기능이 있는 프로젝터를 활욯해 개학식을 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교실에서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또 새 학년으로 올라가서 바뀐 반 배치 현황도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게시판을 이용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각각 종이에 적어서 알려줬다고 해요.

휴교를 결정하지 못하던 스즈카시에서는 개학식 다음날인 14일에 결국 1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임시 휴교를 발표했습니다.

한편 스즈카시뿐만 아니라 와카야마현에서도 일부 학교에서 지난 13일 입학식이 진행되었는데요.

이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쓰고 등교한 뒤 TV모니터를 통해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인 14일부터 다시 임시 휴교에 들어간 상태인데 이럴 거면 왜 학교 오라고 했을까요?

학교로 모여서 집단감염 된 후 각 가정으로 돌아가 가정가정마다 모두 감염돼라고 그런 것 같네요.

일본의 자폭정책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이러한 괴팍한 온라인 개학 외에도 일본은 현재 무너져 내리는 중이죠

물론 세계적으로 단체활동을 꺼리는 추세이긴 하지만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을 아주 멋지게 하는 바람에 올림픽 또한 연기가 되었죠 :)

그로인해 일본의 부채는 더 늘어만 가는 추세입니다.

현재 아베 총리는 신뢰가 떨어져 가고 있으며 힘을 잃어가는 중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총리선출에 나올 고이즈미 신지로는 과거 거물 정치인으로 일본총리를 역임했고 아베신조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차남으로 81년생의 젊은 정치인입니다.

보통의 정치인들에 비해 젊고 일본에서 꽤 오랫동안 집권했던 준이치로의 아들이라는 후광이 있기 때문에 일본내에서는 인기가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장선거도 아니고 인기로 정치적 투표를 하는 건 아닙니다.

누가 정치를 잘할 것인가 누가 자국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놓고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에서는 고이즈미 신지로는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은 인물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굉장히 자연적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진이라던가 기후라던가 해일과 같은 재해에 굉장히 취약한 나라죠.

이렇게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항상 중요한 문제거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차기 총리후보인 신지로에게도 질문을 하는데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의 신지로의 발언은 이러했습니다.

"정치에는 너무나 많은 이슈들이 있고, 때로 이들은 지루하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를 다루는 것은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해야만 한다.

그리고 2045년도까지 제염 폐기물 등을 일시 보관하는 중간 저장 시설을 현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이 가능하다면 그 근거는? 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근엄하게.. 약속하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1900년대 중반 신지로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라는 인물인데요.

1943년 3월에 제15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1944년 3월부터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시작된 임팔 작전을 맡게 되었습니다.

임팔 작전에서 무타구치는 정글과 높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는 산악 지대를 통과해 전진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작전에 대해 당시 일본 군부와 제15군의 참모 등 많은 이들이 물자 운송에 어려움이 있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대했지만, 군 지휘부에서는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놓인 태평양 전쟁 상황의 돌파구를 기대하며 이 작전을 허락하였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요.

필요했던 운송 장비 등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무타구치는 현지의 소를 이용합니다.

짐을 운반한 후 운반이 끝나면 식량으로도 이용한다는 과거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할 때 즐겨 사용했던 이른바 칭기즈 칸 작전을 실시한 것인데요.

그러나 저습지의 무른 땅에서주로 생활해 온 미얀마 소는 딱딱한 산길로의 장기간 보행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산악 지대에는 소가 먹을 풀이 부족해 많은 소들이 피곤과 굶주림에 지쳐 주저앉았습니다..

작전은 명백히 실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타구치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치 않고 작전을 강행하는데요.

다른 사단장들의 반대와 불만이 점차 커져갔습니다.

거기에 전황이 악화되고 보급이 차단되어 병사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지는 일이 잇따르자 제31사단 사단장 사토 고토쿠 중장이 명령을 무시하고 무단 퇴각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결국 무타구치의 밀어붙이기식 작전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6만 5천 명의 병사 중 겨우 1만 5천 명이 살아돌아온 대실패였죠.

임팔 작전 실패 후 무타구치는 제15군 사령관에서 파면된 후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으나, 1945년 다시 소집되어 육군예과사관학교장을 역임합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이러한 일화가 전해지자 우리나라에서는 영웅대접을 받고 있으며 신지로 또한 영웅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가 높아지는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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